·[인터뷰] 변심해줘서 고마워, 신·승·훈 he is...

·[인터뷰] 변심해줘서 고마워, 신·승·훈



'발라드 황제' 신·승·훈.

설명은 생략하자. 그 누구보다 지겹도록 들었을테니까.

올해로 데뷔 19년차를 맞은 신승훈은 그 흔한 스캔들 한번 없었다. 학창시절 반듯한 모범생처럼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딛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밝고 곧은 길만 걸어온 듯 하다.

전공인 '음악' 이외에도 그에겐 '성실하고 반듯한' 이미지가 있다. 행여 눈을 마주치면 예의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해줄 것 같은, 딱 한번을 만났어도 왠지 기억해줄 것 같은 사람.

신승훈은 이것 모두 '배려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팬들뿐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배려심'이 깊은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번을 만나도 10년을 만난 것처럼 정겹고 친절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싶은 콘서트에서도 그를 찾아준 게스트들을 소개하느라 20여분을 보내던 그였다.

그러나 자신의 음악에 있어서 만큼 언제나 그 반대였다. 철저하고 완벽했다. 어떤 이는 답답하리만큼 고집불통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가 '변심'을 했다. 난데없는 변심이 아니다. 부담감을 덜어내고 욕심을 버렸다. 수천명이 모인 체조경기장이 아닌 강남의 한 재즈카페에서 쇼케이스를 했던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 앨범에 대해 '일탈'이라고도 했고, '지금까지 해 왔던 음악 중 발라드만 빼고 넣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발라드=신승훈'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도 했다.

인터뷰를 위해 신승훈을 만난 날은 촉촉한 가을비가 내렸다. '내가 떴다' 하면 비를 몰고 온다는 그는 자신의 사무실(도로시뮤직) 옆 카페에서 "이곳이 내 아지트다. 비 오는 날, 이곳에 오면 예술이다"며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의 말투와 대답, 웃음에는 '여유'와 '재치'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진지함'이 묻어났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놈놈놈' 영화 봤냐는 얘기는 해도, 누구 앨범 들어봤냐는 얘기는 절대 안 하고 있다는 거지. 그런데 음악은 다 듣고 있어. 어디서 듣냐? 자기 할 일 하면서 ‘싸이’에서 듣고 있다. 이제 속으로만 듣고 있지, 공유를 하지 않는다. 가수가 TV에 나오면 '컴백했구나'는 알아도 무슨 노래를 갖고 나왔는지는 모른다는 거다."

‘라디오 웨이브(Radio Wave)’는 신승훈이 데뷔 이래 처음으로 시도한 프로젝트 앨범 ‘쓰리 웨이브스 언익스펙티드 트위스트(3 Waves Unexpected Twist)’의 첫 번째 음반이다. ‘라디오 웨이브’를 시작으로 신승훈은 내년까지 총 3장의 ‘웨이브’ 시리즈로 음반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앨범 역시 신승훈이 전 곡을 작곡·프로듀싱 했다. '라디오를 켜봐요'는 신승훈의 음악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사운드의 곡. 어쿠스틱한 사운드에서 모던 록적인 사운드로 전환되는 반전적인 후렴구의 진행이 마치 두 가지의 다른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 발라드가 아닌 모던 록 색채가 짙은 음악이다.

▶ 음악적으로 더 올라가려고 했으면, 팝페라나 오페라를 했을 것이다.(웃음) 많이 비운 앨범이다. 11집을 내기 전에 ‘일탈’을 한 앨범이다.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어머니에게 안 들려줬다. 충격 받으실까봐…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사랑' 같은 노래를 좋아하신다. 예전처럼 나사를 꽉 채운 앨범이 아니라 풀어놓은 앨범이다.


- ‘변화’를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 '신승훈은 발라드에 안주한다'고 그러는데 한 장르를 고집스럽게 한 것이 장인정신으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그냥 고집불통처럼 보여지는 것이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외국 화가들을 보면 화풍이 있어서 '저게 고갱 것인지 고흐 것인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내게 ‘왜 피카소처럼 안 하냐’고 하는데 고민도 많았다. 그냥 변하거나 비우면 '똑같은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 게 현실이어서 많이 비웠다. 한번 바꿔서 멀리서 나를 보고 싶었다. 신승훈에서 빠져 나와서 더 좋은 게 보이면 다음 앨범에 넣고 싶었다.

- 이번 앨범은 '터닝포인트' 같은 앨범이라고 했다.

▶ 내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는 결혼이 될 줄 알았다.(웃음) 그게 안되었으니 이번 앨범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11집을 만들기 위한 오버랩 같은 음반이다. 일본 디즈니랜드에서 10분 만에 타이틀곡 '송 포 유'를 만들고, 리메이크를 절대 하지 않던 내가 일본곡 '사요나라'를 리메이크해서 수록하다 보니 창작의 폭이 확 넓어졌다. 내가 만약 정규앨범을 내려고 했다면 내년에 냈을 거다.

- 열혈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 ‘신승훈은 이번에 록’하고 기사가 나가니까 팬들이 ‘그럼, 오빠 징 박힌 걸 입고 나오시겠다는 말인가요?’ 하더라. 하지만 티저영상를 보고 ‘이런 거라면 환영이다’고 했다.

- 이번 앨범의 반응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 '놈놈놈' 영화 봤냐는 얘기는 해도, 누구 앨범 들어봤냐는 얘기는 절대 안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음악은 다 듣고 있다.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싸이월드’에서 듣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속으로만 듣고 있지, 공유를 하지 않는다. 이번 앨범에 대한 어떠한 반응이 나와도 괜찮다. 정규앨범이 아니니까. 하지만 앞으로 발표하게 될 두 번의 앨범을 더 듣고 판단해달라. 평가는 그때로 미뤄졌으면 좋겠다.

- 이번 앨범을 만들 때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 사람들은 내가 슬럼프가 없는 가수인 줄 안다. 사실 나는 곡을 쓸 때마다 슬럼프가 있다. 앨범이 나오기 전 9~10개월부터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 에릭 베넷의 '허리케인' 앨범을 듣다가 '얘는 노래도 잘 하고 곡도 좋고… 여기서 이 코드가 뭐지? 이 코드를 어떻게 쓸 수 있지?' 그러면서 슬럼프에 확 빠진다. ‘난 이런 거 못 쓰구나, 언제 쓸 수 있을까’ 이러면서 미친다. 대중들은 그 슬럼프 기간 동안 잠적을 해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 앨범을 발표하고 난 후 이곳저곳에서 다음 앨범을 같이 하자는 제의가 많았다고 하던데.

▶ 편곡이 되기 전까지는 남에게 절대 들려주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내 음악은 멜로디가 강하다 보니 현혹될 수 있고, 내 목소리가 들어가면 신승훈이라는 믿음이 있어 웬만하면 좋다고 한다. 이번에는 몸체가 나오기 전부터 내가 아는 지인들 40-50명에게 들려줬다. 김종서 같은 가수들은 절대 신승훈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다. ‘라디오를 켜봐요’는 타이틀 곡이라기 보다는 먼저 선보이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기승전결이 있는데 음악은 트랙이라는 것으로 구분지을 수 밖에 없어서 아쉽다. 라디오를 켜봐요 끝 부분과 나비효과가 연결되는데 그 곡을 합치면 8분 20초다. 그 시간이면 신인 3명의 노래를 튼다.

- 음악 하는 동료, 선후배들의 반응은 어떤가.

▶ 작곡가 (김)형석씨나 방시혁씨 황세준, 황찬희 같은 친구들이 ‘그냥 수고하셨습니다’가 아니라 많이 좋아해줬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많이 인정해준 앨범이어서 그게 고맙다. 이승철의 ‘열을 세어보아요’를 만든 이현승이라는 친구도 ‘형 다음 앨범 같이 해요’ 하면서 '형, 우리 앞에서 앓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얼마 전에 형석씨가 아침 라디오에 나와서 극찬을 해줘서 친구이지만 너무 고마웠다. 평론가 임진모씨도 최근에 만났는데 라디오에서 1시간 동안 내 앨범에 대해 칭찬을 해줬다.




- 발라드만 한 것도 아닌데 아직도 신승훈 하면 ‘발라드 황제’를 본능적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 우리나라에서 3장 이상 잘 된 가수가 거의 없다. 1000만장이 넘으면 목소리가 질리게 된다는 얘기는 사실이다. 이제 내 목소리는 콜라처럼 되어버려서 신선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늘 ‘의리 있는 팬을 만났다’고 얘기하는데 내 노래가 ‘애이불비’도 있지만 그냥 발라드라고 하기엔 너무 처절한 발라드다. 힙합 마니아, 록 마니아는 많이 들어봤겠지만, 발라드 마니아라는 말은 생소하다. 그런데 나한테는 ‘발라드 마니아’가 있다. 또, 곡을 직접 쓰니까 '이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는 거다. 가끔 팬들이 '편지 20통이나 보냈는데 왜 답장 안 해줘요?'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난 앨범으로 답장을 해준다고 말한다. 6집을 내면 오빠가 보내는 6번째 답장이라고 말한다. 9집 제목이 '나인쓰 리플라이(9th reply)'였던 건 팬들과 나만의 암호를 타이틀로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왜 발라드 황제냐고 묻는다. 요미우리 신문 기자가 당신은 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왜 한국에서 발라드 황제라고 부르냐고 하더라.

-'발라드 황제'라는 수식어가 이후 조성모, 성시경 등 후배가수들에게도 달렸다.

▶ 어떨 때는 조성모를 발라드 황제라고 했다가, 왕자로 바뀌었다가 갑자기 내가 발라드 황제였다가 황태자로 바뀌고… 아버지가 난데 아들이 내가 되고… '발라드 황제'라는 단어 자체가 양면의 칼을 갖고 있어서 '신승훈은 발라드를 해야 한다' '발라드 이외의 것을 하면 안 어울린다'는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다. 하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신승훈이 발라드를 하면 최고봉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자체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앨범은 어찌보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해 왔던 것 중에 발라드만 빼고 다 집어넣는 것이다. 나는 내가 후속곡을 민 적이 없다. 다운타운 차트에서 알아서 올라온다. 팬들이 다 알아서 만들어준다. 나중에 노래를 할 줄 아는 가수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사람들은 내가 맘보, 하우스, 월드뮤직, 국악, 탱고까지도 만들었는데 기억 속에서 자꾸 지우려는 것 같다.

- 요즘 가요계를 보면 중간이 없다.

▶ 예전에는 ‘음악시장’이라는 단어로 가요계를 지칭했는데, 요즘은 ‘음악산업’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 만큼 가수만 해서는 버티기 힘들다. 팬들 뿐 아니라 언론도 가수들에게 5년 이상 활동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가수로 데뷔해서 5년 정도 활동을 하게 되면 콘서트를 열 만한 자질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5년 이상이 되면 다른 가수가 나오고 사람들은 외면하기 시작한다. 그 가수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콘서트7080'이 생겼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근황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다 나와서 노래도 하고 앨범도 낸다는 소식을 전해주더라.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걸 알릴만한 매체가 없었다는 거다. TV에 나가면 컴백했다는 것은 알아도 무슨 노래를 발표했는지는 모른다. 또, 노래 '사비'는 알아도 다른 부분은 따라부르질 못한다. 이게 우리나라 방송 프로그램의 '맹점' 같기도 하다. '그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가 아니라 역사를 짚어줘야 한다.

- 가요 순위 프로그램 출연은 앞으로도 안 할 것인가.

▶ 이제 무슨 상을 받아도 감흥 없다. 트로피 하나 때문에 눈물을 펑펑 흘리는 신인들도 많지만, 우리 집에 트로피가 800개이다. 이제는 그런 것에 집착할 나이는 아니다. 타이틀 곡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영화 ‘타이타닉’을 6번이나 봤는데 한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서 2시간 30분이었던 공연시간을 3시간 15분으로 늘였다.

- 싱어송라이터가 사라져가는 것도 아쉽다.

▶ 신인 때는 카메라 잘 쳐다보는 법, 카메라 잡아먹는 법을 배운다. 매니저가 "카메라를 잡아 먹으란 말이야!" 이렇게 가르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5년 정도가 지나 공연을 할 줄 알게 되면 대중들이 버려버린다. 공연을 할 역량이 되면 올 사람이 없어서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한다고 '뮤지션'이라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는 가수가 2년 정도 활동하면 '뮤지션'이란 호칭을 붙여준다. 음악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뮤지션'이다. 난 19년 동안 '뮤지션'이 되고 싶어서 아직도 노력하고 있는데 까마득한 후배는 벌써 '아티스트'라는 칭호가 붙었다.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에 아티스트는 (조)용필이 형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언론에서도 구분해서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 일본에서의 인기를 얻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몸으로 뜬 거다.(웃음) 돈 주겠다는데 내가 고집스럽게 첫 공연을 노개런티로 가자고 했다. 대신 함께 하던 밴드와 스태프를 그대로 쓰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런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이 재미있다면서 자신의 딸을 데리고 오고, 또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내가 시작할 때는 한국가요에 대해 불모지였는데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 대중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동방신기나 빅뱅 같은 가수들이 공연도 하고… 또, 내가 앙코르에 응해서 좋아했던 것 같다. 일본 가수들은 앙코르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는 '앙코르' 하면 순순히 나가 목이 터져라 몇 곡을 더 불렀더니 '야사시이(착하다)'라고 하더라. 일본에서는 내가 한국말로 노래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 프로듀서로 후배 양성을 하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는데.

▶ 신승훈이 힙합 가수 키운다고 기사가 나가 힙합 하는 친구들이 찾아온다.(웃음) 한가지 예를 든 것이지 힙합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프로듀서는 체제가 확실히 잡혀지면 할 것이다. 프로듀서가 언젠가부터 사업가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신인을 키우면서 돈을 벌고 있구나' 이런 마인드로 가면 곤란하다. 나에게 안 맞아서 하지 못했던 음악,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게 강타가 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강타가 부르니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 음악은 변했지만, 19년째 '스타일'에는 변화가 없다.

▶ 그건 나의 잘못일 수도 있다. 다른 가수들은 노래 녹음이 끝나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나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모든 곡을 다 써야 하고, 편곡해야 하고, 마스터링도 해야 한다. 코디와 상의해서 의상의 변화를 가질 시간이 없다.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음악의 변화를 의상이나 스타일로 보여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연예인스럽지 않은 모습들) 더 편안하고 정겨워보이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1위 하기 전날도 오피스텔 경비 아저씨와 소주를 마셨다. 다음 날 TV에서 1위 하는 걸 보고 '왜 당신이 신승훈이라고 말 안했냐'고 야단치더라. 또 한번은 강남역에서 내 노래를 누가 따라부르는데도 옆에 바로 내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몰라봤다. 난 비주얼 가수가 아니다.

- 나이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얼굴이 동안이다. 주름살도 거의 없고…

▶ 얼마 전에 경락이란 것을 알았는데 효과가 좋다.(웃음) 종합비타민제 ○○○도 꼭 챙겨먹는다.

- ‘무릎팍도사’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입담을 과시했다. 시청률 강자로 떠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 누가 내 팬이라고 하면 노래는 잘 아는데 나에 대해 너무 모르더라. 재미있게 해주면 ‘원래 이렇게 재미있었던 분이었냐?’ 고 묻는다. 신승훈 하면 말도 없이 술 먹다가 '씨익~' 웃는 사람인 줄 알더라. 내가 예전에 '별밤'의 문세 형을 잡아먹었던 사람인데…(웃음) 내가 참 대중과 멀어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다. 이번엔 좀 시끄럽게 가고 싶다고 팬들에게 미리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질타를 안 받고, 드러나면 질타를 받겠지만 그래도 시끄럽게 가고 싶다.

- 평범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건가.

8년 동안 신승훈 끝장이 났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숨어 있었던 게 아니라 팬들과 함께 있었다. ‘더 신승훈 쇼’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팬들과 함께 했고 일본에 가서 성과도 있었다. 8년 정도 팬들에 대한 보답을 했으니 지금 생활인이 되어 있는 떠나갔던 추억의 팬들과 만나고 싶다. 그게 대중가수니까. 그렇다고 10대들에게 '날 좋아해주세요'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겐 그들이 좋아할 가수들이 너무 많다.

"예전엔 같은 계통의 일을 하는 '연예인'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괜찮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짱가'를 모르는 사람만 아니면 된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 음악 이외에 관심이 가는 것은 뭔가.

▶ 요즘엔 모든 관심사를 잃어버렸다. 음악에 많은 비중을 뒀던 사람이었고, 집에 3일을 혼자 있어도 심심함을 몰랐던 내가 변했다. 서서히 밀려오는 뭔가…'이래서 다들 결혼하는 건가?' 싶다.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개팅이 들어오지 않나.


▶ 대학 때 미팅 해 본 적 없고, 소개팅 한번 해본 적 없다. 대학 때는 캠퍼스 커플로 공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개팅을 하면 '외도'였다.(웃음)

- 남편감으로 좋은 이미지다. 누구보다 자상한 남편이 될 것 같다.

▶ 무슨 순위에서 신랑감 1위로 뽑힌 적도 있다. 근데, 그건 트랜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여전히 1등으로 끌어온 사람은 유재석뿐이다.(웃음)

- 결혼이 조금 늦어졌으니 보상심리로 띠동갑을 찾는 건 아닌가.

▶ 옛날엔 14세 차이가 나는 여자와 결혼하면 '도둑장가'라고 신문에 도배되곤 했다. 이제는 아무 상관 없다. 예전엔 같은 계통의 일을 하는 '연예인'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괜찮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짱가'를 모르는 사람만 아니면 된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코는 이렇게 생겼고 눈은 이렇게 생겼다'며 그림으로 그려줄 수 있다.(웃음)

- 결혼에 대해 집에서 압박이 심할 것 같다.

▶ 4년 전에는 심했다. 지금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내 성격 중 장점이면 장점이고 단점이면 단점이라 할 수 있는 '특유의 배려심' 때문에 결혼이 늦어진 것도 있다. 나는 '좀 손해 봐도 그냥 내가 참고말지 뭐' 하는 게 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면 그게 더욱 심해질 것 같다. 나는 밖에 일 하러 나가 있고, 와이프는 집에 혼자 있다면 와이프가 심심해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이 잘 안될 것 같다. 내가 잘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을 하면 안될 것 같았다. 부모님도 나의 그런 마음을 잘 아신다.

- 눈이 높다는 얘기도 많다.

▶ 그런 얘기가 많은데 무슨 기준이 있어야 눈이 높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밖에 나가서 여자를 봐야 이런 타입이 좋고 이런 타입은 싫다고 하텐데, 나가지를 않으니 그럴 것도 없다. 맨날 만나는 사람이 김형석, 김민종, 강타, 성시경, 싸이, 박용하인데… 그 친구들도 '형, 주위에 소개해주는 사람들 없나요?' 그러는데, 그러면 나는 '이 놈들아! 너희들이 내 주위야!' 그런다.

- 바른생활 이미지도 강하다 스캔들도 없고…

▶ 난 이게 편하다. 신승훈 하면 자기관리가 철저하다고 소문났다던데… 있는 데 없는 척 하는 게 철저한 거 아닌가. 내가 술을 잘 먹고 안 취하는데 일부러 취한 척 해야 하나. 난 집이 좋은데… 싫어 죽겠는데도 밖에 나가서 뭘 해야 하나. 이 친구(매니저)는 안다. 내가 너무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니니까 '형, 누가 봐요. 좀 갈아입고 나가요' 라고 잔소리를 한다. 가끔 옷을 사러 가면 연예인 같지 않은 곳을 고를 때가 많다. 난 가수이고, 노래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날 연예인으로 보고 있다. 가끔 그걸 잊어버릴 때가 있다.

- '신승훈스럽다'는 어떤 뜻일까.

▶ '안주하지 않는다'가 아닐까. 후배들에게도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는 '롤 모델'로 남고 싶다. '노래를 좀 할 줄 알았던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 |

- 안성기씨 등과 함께 좋은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소리 소문 없이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데 이제는 나도 그 방법을 배우고 싶다. 이 인터뷰가 끝나면 선배님을 만나러 가야 한다.

[매경인터넷 진향희 기자 happy@mk.co.kr]






[인터뷰 ①] 신승훈 "`그 영화 봤냐?`고는 해도 `그 노래 들어봤냐`는 얘기는 안한다"



신승훈의 가요계 등장은 신선하고 강렬했다.

그의 음악은 '발라드=신승훈'이라는 공식을 세울 만큼 독보적이었다. 언제나 그의 이름 앞에는 '가수'라는 말보다 '발라드 황제'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했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1990)로 데뷔, '보이지 않는 사랑'(1991) '그 후로 오랫동안'(1994) '아이 빌리브'(2001)등 수 많은 발라드 히트 넘버들이 쏟아져나왔고, 1000만장이 팔리면 '목소리에 질린다'는 변덕스런 이곳에서 1500만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지금도 롱런하고 있다.

2008년 가을, 신승훈이 '발표한 ‘라디오 웨이브(Radio Wave)’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시도한 프로젝트 앨범이다. 3연작으로 발표될 ‘쓰리 웨이브스 언익스펙티드 트위스트(3 Waves Unexpected Twist)’의 첫 번째 음반인 셈이다. 이번 앨범 역시 신승훈이 전 곡을 작곡·프로듀싱 했다.

그런데 '발라드'가 아닌 '모던 록' 색채가 짙은 앨범이다. '라디오를 켜봐요'는 신승훈의 음악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사운드의 곡. 어쿠스틱한 사운드에서 모던 록적인 사운드로 전환되는 반전적인 후렴구의 진행이 마치 두 가지의 다른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 발라드가 아닌 모던 록 색채가 짙은 음악이다.

▶ 음악적으로 더 올라가려고 했으면, 팝페라나 오페라를 했을 것이다.(웃음) 많이 비운 앨범이다. 11집을 내기 전에 ‘일탈’을 한 앨범이다.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어머니에게 안 들려줬다. 충격 받으실까봐…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사랑' 같은 노래를 좋아하신다. 예전처럼 나사를 꽉 채운 앨범이 아니라 풀어놓은 앨범이다.

- ‘변화’를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 '신승훈은 발라드에 안주한다'고 그러는데 한 장르를 고집스럽게 한 것이 장인정신으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그냥 고집불통처럼 보여지는 것이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외국 화가들을 보면 화풍이 있어서 '저게 고갱 것인지 고흐 것인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내게 ‘왜 피카소처럼 안 하냐’고 하는데 고민도 많았다. 그냥 변하거나 비우면 '똑같은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 게 현실이어서 많이 비웠다. 한번 바꿔서 멀리서 나를 보고 싶었다. 신승훈에서 빠져 나와서 더 좋은 게 보이면 다음 앨범에 넣고 싶었다.

- 이번 앨범은 '터닝포인트' 같은 앨범이라고 했다.

▶ 내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는 결혼이 될 줄 알았다.(웃음) 그게 안되었으니 이번 앨범이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11집을 만들기 위한 오버랩 같은 음반이다. 일본 디즈니랜드에서 10분 만에 타이틀곡 '송 포 유'를 만들고, 또 나는 리메이크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일본곡 '사요나라'를 리메이크해서 수록하다 보니 창작의 폭이 확 넓어졌다. 내가 만약 정규앨범을 내려고 했다면 내년에 냈을 거다.

- 열혈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 ‘신승훈은 이번에 록’하고 기사가 나가니까 팬들이 ‘그럼 징 박힌 거 입고 나올 건가요?’ 하더라. 하지만 티저영상를 보고 ‘이런 거라면 환영이다’고 했다.




- 이번 앨범의 반응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 '놈놈놈' 영화 봤냐는 얘기는 해도, 누구 앨범 들어봤냐는 얘기는 절대 안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음악은 다 듣고 있다.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싸이월드’에서 듣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속으로만 듣고 있지, 공유를 하지 않는다. 이번 앨범에 대한 어떠한 반응이 나와도 괜찮다. 정규앨범이 아니니까. 하지만 앞으로 발표하게 될 두 번의 앨범을 더 듣고 판단해달라. 평가는 그때로 미뤄졌으면 좋겠다.

- 음악은 변해도, 스타일에는 큰 변화가 없다.

▶ 그건 나의 잘못일 수도 있다. 다른 가수들은 노래 녹음이 끝나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나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모든 곡을 다 써야 하고, 편곡해야 하고, 마스터링도 해야 한다. 코디와 상의해서 의상의 변화를 가질 시간이 없다. 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음악의 변화를 의상이나 스타일로 보여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1위 하기 전날도 오피스텔 경비 아저씨와 소주를 마셨다. 다음 날 TV에서 1위 하는 것을 보고 '왜 당신이 신승훈이라고 말 안했냐'고 하더라. 강남역에서 내 노래를 누가 따라부르는데도 옆에 있는 나를 사람들이 몰라봤다. 난 비주얼 가수가 아니다.

- 발라드만 한 것도 아닌데 아직도 신승훈 하면 ‘발라드 황제’를 본능적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 우리나라에서 3장 이상 잘 된 가수가 거의 없다. 1000만장이 넘으면 목소리가 질리게 된다는 얘기는 사실이다. 이제 내 목소리는 콜라처럼 되어버려서 신선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늘 ‘의리 있는 팬을 만났다’고 얘기하는데 내 노래가 ‘애이불비’도 있지만 그냥 발라드라고 하기엔 너무 처절한 발라드다. 힙합 마니아, 록 마니아는 많이 들어봤겠지만, 발라드 마니아라는 말은 생소하다. 그런데 나한테는 ‘발라드 마니아’가 있다. 또, 곡을 직접 쓰니까 '이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는 거다. 가끔 팬들이 '편지 20통이나 보냈는데 왜 답장 안 해줘요?'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난 앨범으로 답장을 해준다고 말한다. 6집을 내면 오빠가 보내는 6번째 답장이라고 말한다. 9집 제목이 '나인쓰 리플라이(9th reply)'였던 건 팬들과 나만의 암호를 타이틀로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왜 발라드 황제냐고 묻는다. 요미우리 신문 기자가 당신은 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왜 한국에서 발라드 황제라고 부르냐고 하더라.

- 이번 앨범을 만들 때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 사람들은 내가 슬럼프가 없는 가수인 줄 안다. 사실 나는 곡을 쓸 때마다 슬럼프가 있다. 앨범이 나오기 전 9~10개월부터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 에릭 베넷의 '허리케인' 앨범을 듣다가 '얘는 노래도 잘 하고 곡도 좋고… 여기서 이 코드가 뭐지? 이 코드를 어떻게 쓸 수 있지?' 그러면서 슬럼프에 확 빠진다. ‘난 이런 거 못 쓰구나, 언제 쓸 수 있을까’ 이러면서 미친다. 대중들은 그 슬럼프 기간 동안 잠적을 해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완벽하려고 한 앨범이 아닌 부담감 없이 만든 앨범이다.

- ‘무릎팍도사’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입담을 과시했다. 시청률 강자로 떠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 누가 내 팬이라고 하면 노래는 잘 아는데 나에 대해 너무 모르더라. 재미있게 해주면 ‘원래 이렇게 재미있었던 분이었냐?’ 고 묻는다. 신승훈 하면 말도 없이 술 먹다가 '씨익~' 웃는 사람인 줄 알더라. 내가 예전에 '별밤'의 문세 형을 잡아먹었던 사람인데…(웃음) 내가 참 대중과 멀어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다. 이번엔 좀 시끄럽게 가고 싶다고 팬들에게 미리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질타를 안 받고, 드러나면 질타를 받겠지만 그래도 시끄럽게 가고 싶다. 8년 동안 신승훈 끝장이 났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숨어 있었던 게 아니라 팬들과 함께 있었다. ‘더 신승훈 쇼’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팬들과 함께 했고 일본에 가서 성과도 있었다. 8년 정도 팬들에 대한 보답을 했으니 지금 생활인이 되어 있는 추억의 팬들과 만나고 싶다. 신승훈 팬이 아니더라도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 그게 대중가수니까.

- 앨범을 발표하고 난 후 이곳저곳에서 다음 앨범을 같이 하자는 제의가 많았다고 하던데.

▶ 편곡이 되기 전까지는 남에게 절대 들려주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내 음악은 멜로디가 강하다 보니 현혹될 수 있고, 내 목소리가 들어가면 신승훈이라는 믿음이 있어 웬만하면 좋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몸체가 나오기 전부터 내가 아는 지인들 40-50명에게 들려줬다. 김종서 같은 가수들은 절대 신승훈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다. ‘라디오를 켜봐라’는 타이틀 곡이라기 보다는 먼저 선보이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기승전결이 있는데 음악은 트랙이라는 것으로 구분지을 수 밖에 없어서 아쉽다. 라디오를 켜봐요 끝 부분과 나비효과가 연결되는데 그 곡을 합치면 8분 20초다. 그 시간이면 신인 3명의 노래를 튼다.


- 음악하는 동료, 선후배들의 반응은 어떤가.

▶ 작곡가 (김)형석씨나 방시혁씨 황세준, 황찬희 같은 친구들이 ‘그냥 수고하셨습니다’가 아니라 많이 좋아해줬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많이 인정해준 앨범이어서 그게 고맙다. 이승철의 ‘열을 세어보아요’를 만든 이현승이라는 친구도 ‘형 다음 앨범 같이 해요’ 하면서 '형, 우리 앞에서 앓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얼마 전에 형석씨가 아침 라디오에 나와서 극찬을 해줘서 친구이지만 너무 고마웠다. 평론가 임진모씨도 최근에 만났는데 라디오에서 1시간 동안 내 앨범에 대해 칭찬을 해줬다.

- 가요 순위 프로그램 출연은 앞으로도 안 할 것인가.

▶ 이제 무슨 상을 받아도 감흥 없다. 트로피 하나 때문에 눈물을 펑펑 흘리는 신인들도 많지만, 우리 집에 트로피가 800개이다. 이제는 그런 것에 집착할 나이는 아니다. 타이틀 곡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영화 ‘타이타닉’을 6번이나 봤는데 한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서 2시간 30분이었던 공연시간을 3시간 15분으로 늘였다.



- 일본에서의 인기를 얻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몸으로 뛰었다. 첫 공연을 고집스럽게 노개런티로 하자고 했다. 대신 함께 하던 밴드와 스태프를 그대로 쓰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런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이 재미있다면서 자신의 딸을 데리고 오고, 또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내가 시작할 때는 한국가요에 대해 불모지였는데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 대중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동방신기나 빅뱅 같은 가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또, 내가 순순히 앙코르에 응해서 좋아했던 것 같다. 일본 가수들은 앙코르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는 '앙코르' 하면 목이 터져라 몇 곡을 더 불렀더니 '야사시이(착하다)'라고 하더라. 일본에서는 내가 한국말로 노래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발라드 황제'라는 수식어가 이후 조성모, 성시경 등 후배가수들에게도 달렸다.

▶ 어떨 때는 조성모를 발라드 황제라고 했다가, 왕자로 바뀌었다가 갑자기 내가 발라드 황제였다가 황태자로 바뀌고… 아버지가 난데 아들이 내가 되고… '발라드 황제'라는 단어 자체가 양면의 칼을 갖고 있어서 '신승훈은 발라드를 해야 한다' '발라드 이외의 것을 하면 안 어울린다', 하지만 좋은 쪽으로 보면 신승훈은 발라드를 하면 최고봉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자체는 좋은 것일 수 모르겠지만… 이번 앨범은 어찌보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해 왔던 것 중에 발라드만 빼고 다 집어넣는 것이다. 나는 내가 후속곡을 민 적이 없다. 다운타운 차트에서 알아서 올라온다. 팬들이 다 알아서 만들어준다. 나중에 노래를 할 줄 아는 가수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사람들은 내가 맘보, 하우스, 월드뮤직, 국악, 탱고까지도 만들었는데 기억 속에서 자꾸 지우려는 것 같다.

- 요즘 가요계를 보면 중간이 없다.

▶ 예전에는 ‘음악시장’이라는 단어로 가요계를 지칭했는데, 요즘은 ‘음악산업’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 만큼 가수만 해서는 버티기 힘들다. 팬들 뿐 아니라 언론도 가수들에게 5년 이상 활동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가수로 데뷔해서 5년 정도 활동을 하게 되면 콘서트를 열 만한 자질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5년 이상이 되면 다른 가수가 나오고 사람들은 외면하기 시작한다. 그 가수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콘서트7080'이 생겼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근황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다 나와서 노래도 하고 앨범도 낸다는 소식을 전해주더라.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걸 알릴만한 매체가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최근 활동이 뜸했던 가수의 근황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돼서는 안 된다. 가요계의 역사를 짚어주는 프로그램이 돼야 한다.

- 프로듀서로 후배 양성을 하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는데.

▶ 신승훈이 힙합 가수 키운다고 기사가 나가 힙합 하는 친구들이 찾아온다.(웃음) 한가지 예를 든 것이지 힙합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프로듀서는 체제가 확실히 잡혀지면 할 것이다. 프로듀서가 언젠가부터 사업가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신인을 키우면서 돈을 벌고 있구나' 이런 마인드로 가면 곤란하다. 나에게 안 맞아서 하지 못했던 음악,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강타가 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강타가 부르니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매경인터넷 진향희 기자 happy@mk.oc.kr]


[인터뷰 ②] 신승훈 "자기관리 철저하다고? 난 이게 편한데…"

 


'발라드 황제' 신·승·훈.

설명은 생략하자. 그 누구보다 지겹도록 들었을테니까.

올해로 데뷔 19년차를 맞은 신승훈은 그 흔한 스캔들 한번 없었다. 학창시절 반듯한 모범생처럼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딛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밝고 곧은 길만 걸어온 듯 하다.

전공인 '음악' 이외에도 그에겐 '성실하고 반듯한' 이미지가 있다. 행여 눈을 마주치면 예의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해줄 것 같은, 딱 한번을 만났어도 왠지 기억해줄 것 같은 사람.

신승훈은 이것 모두 '배려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팬들뿐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배려심'이 깊은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번을 만나도 10년을 만난 것처럼 정겹고 친절하다. 시간이 부족하다 싶은 콘서트에서도 그를 찾아준 게스트들을 소개하느라 20여분을 보내던 그였다.

그러나 자신의 음악에 있어서 만큼 언제나 그 반대였다. 철저하고 완벽했다. 어떤 이는 답답하리만큼 고집불통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가 '변심'을 했다. 난데없는 변심이 아니다. 부담감을 덜어내고 욕심을 버렸다. 수천명이 모인 체조경기장이 아닌 강남의 한 재즈카페에서 쇼케이스를 했던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이었다.

그는 이번 앨범에 대해 '일탈'이라고도 했고, '지금까지 해 왔던 음악 중 발라드만 빼고 넣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발라드=신승훈'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도 했다.

인터뷰를 위해 신승훈을 만난 날은 촉촉한 가을비가 내렸다. '내가 떴다' 하면 비를 몰고 온다는 그는 자신의 사무실(도로시뮤직) 옆 카페에서 "이곳이 내 아지트다. 비 오는 날, 이곳에 오면 예술이다"며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의 말투와 대답, 웃음에는 '여유'와 '재치'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진지함'이 묻어났다.



"예전엔 같은 계통의 일을 하는 '연예인'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괜찮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짱가'를 모르는 사람만 아니면 된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 음악은 변했지만, 19년째 '스타일'에는 변화가 없다.

▶ 그건 나의 잘못일 수도 있다. 다른 가수들은 노래 녹음이 끝나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나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모든 곡을 다 써야 하고, 편곡해야 하고, 마스터링도 해야 한다. 코디와 상의해서 의상의 변화를 가질 시간이 없다. 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음악의 변화를 의상이나 스타일로 보여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연예인스럽지 않은 모습들) 더 편안하고 정겨워보이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1위 하기 전날도 오피스텔 경비 아저씨와 소주를 마셨다. 다음 날 TV에서 1위 하는 걸 보고 '왜 당신이 신승훈이라고 말 안했냐'고 야단치더라. 또 한번은 강남역에서 내 노래를 누가 따라부르는데도 옆에 바로 내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몰라봤다. 난 비주얼 가수가 아니다.

- 나이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얼굴이 동안이다. 주름살도 거의 없고

▶ 경락이란 것을 알았는데 효과가 좋다. (웃음) 종합비타민제 ○○○도 꼭 챙겨먹는다.

- ‘무릎팍도사’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입담을 과시했다. 시청률 강자로 떠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 누가 내 팬이라고 하면 노래는 잘 아는데 나에 대해 너무 모르더라. 재미있게 해주면 ‘원래 이렇게 재미있었던 분이었냐?’ 고 묻는다. 신승훈 하면 말도 없이 술 먹다가 '씨익~' 웃는 사람인 줄 알더라. 내가 예전에 '별밤'의 문세 형을 잡아먹었던 사람인데…(웃음) 내가 참 대중과 멀어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다. 이번엔 좀 시끄럽게 가고 싶다고 팬들에게 미리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질타를 안 받고, 드러나면 질타를 받겠지만 그래도 시끄럽게 가고 싶다.

- 평범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건가.

8년 동안 신승훈 끝장이 났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숨어 있었던 게 아니라 팬들과 함께 있었다. ‘더 신승훈 쇼’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팬들과 함께 했고 일본에 가서 성과도 있었다. 8년 정도 팬들에 대한 보답을 했으니 지금 생활인이 되어 있는 떠나갔던 추억의 팬들과 만나고 싶다. 그게 대중가수니까. 그렇다고 10대들에게 '날 좋아해주세요'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겐 그들이 좋아할 가수들이 너무 많다.

- 음악 이외에 관심이 가는 것은 뭔가.

▶ 요즘엔 모든 관심사를 잃어버렸다. 음악에 많은 비중을 뒀던 사람이었고, 집에 3일을 혼자 있어도 심심함을 몰랐던 내가 변했다. 서서히 밀려오는 뭔가…'이래서 다들 결혼하는 건가?' 싶다.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개팅이 들어오지 않나.

▶ 대학 때 미팅 해 본 적 없고, 소개팅 한번 해본 적 없다. 대학 때는 캠퍼스 커플로 공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개팅을 하면 '외도'였다.(웃음)

- 남편감으로 좋은 이미지다. 누구보다 자상한 남편이 될 것 같다.

▶ 무슨 순위에서 신랑감 1위로 뽑힌 적도 있다. 근데, 그건 트랜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밖에 없다. 여전히 1등으로 끌어온 사람은 유재석뿐이다.(웃음)

- 결혼이 조금 늦어졌으니 보상심리로 띠동갑을 찾는 건 아닌가.

▶ 옛날엔 14세 차이가 나는 여자와 결혼하면 '도둑장가'라고 신문에 도배되곤 했다. 이제는 아무 상관 없다. 예전엔 같은 계통의 일을 하는 '연예인'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괜찮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짱가'를 모르는 사람만 아니면 된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코는 이렇게 생겼고 눈은 이렇게 생겼다'며 그림으로 그려줄 수 있다.(웃음)


- 결혼에 대해 집에서 압박이 심할 것 같다.

▶ 4년 전에는 심했다. 지금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내 성격 중 장점이면 장점이고 단점이면 단점이라 할 수 있는 '특유의 배려심' 때문에 결혼이 늦어진 것도 있다. 나는 '좀 손해 봐도 그냥 내가 참고말지 뭐' 하는 게 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면 그게 더욱 심해질 것 같다. 나는 밖에 일 하러 나가 있고, 와이프는 집에 혼자 있다면 와이프가 심심해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이 잘 안될 것 같다. 내가 잘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을 하면 안될 것 같았다. 부모님도 나의 그런 마음을 잘 아신다.

- 눈이 높다는 얘기도 많다.

▶ 그런 얘기가 많은데 무슨 기준이 있어야 눈이 높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밖에 나가서 여자를 봐야 이런 타입이 좋고 이런 타입은 싫다고 하텐데, 나가지를 않으니 그럴 것도 없다. 맨날 만나는 사람이 김형석, 김민종, 강타, 성시경, 싸이, 박용하인데… 그 친구들도 '형, 주위에 소개해주는 사람들 없나요?' 그러는데, 그러면 나는 '이 놈들아! 너희들이 내 주위야!' 그런다.

- 바른생활 이미지도 강하다 스캔들도 없고…

▶ 난 이게 편하다. 신승훈 하면 자기관리가 철저하다고 소문났다던데… 있는 데 없는 척 하는 게 철저한 거 아닌가. 내가 술을 잘 먹고 안 취하는데 일부러 취한 척 해야 하나. 난 집이 좋은데… 싫어 죽겠는데도 밖에 나가서 뭘 해야 하나. 이 친구(매니저)는 안다. 내가 너무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니니까 '형, 누가 봐요. 좀 갈아입고 나가요' 라고 잔소리를 한다. 가끔 옷을 사러 가면 연예인 같지 않은 곳을 고를 때가 많다. 난 가수이고, 노래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날 연예인으로 보고 있다. 가끔 그걸 잊어버릴 때가 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놈놈놈' 영화 봤냐는 얘기는 해도, 누구 앨범 들어봤냐는 얘기는 절대 안 하고 있다는 거지. 그런데 음악은 다 듣고 있어. 어디서 듣냐? 자기 할 일 하면서 ‘싸이’에서 듣고 있다. 이제 속으로만 듣고 있지, 공유를 하지 않는다. 가수가 TV에 나오면 '컴백했구나'는 알아도 무슨 노래를 갖고 나왔는지는 모른다는 거다."

‘라디오 웨이브(Radio Wave)’는 신승훈이 데뷔 이래 처음으로 시도한 프로젝트 앨범 ‘쓰리 웨이브스 언익스펙티드 트위스트(3 Waves Unexpected Twist)’의 첫 번째 음반이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신승훈은 내년까지 총 3장의 ‘웨이브’ 시리즈로 음반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앨범 역시 신승훈이 전 곡을 작곡·프로듀싱 했다. '라디오를 켜봐요'는 신승훈의 음악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사운드의 곡. 어쿠스틱한 사운드에서 모던 록적인 사운드로 전환되는 반전적인 후렴구의 진행이 마치 두 가지의 다른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 발라드가 아닌 모던 록 색채가 짙은 음악이다.

▶ 음악적으로 더 올라가려고 했으면, 팝페라나 오페라를 했을 것이다.(웃음) 많이 비운 앨범이다. 11집을 내기 전에 ‘일탈’을 한 앨범이다.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어머니에게 안 들려줬다. 충격 받으실까봐…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사랑' 같은 노래를 좋아하신다. 예전처럼 나사를 꽉 채운 앨범이 아니라 풀어놓은 앨범이다.

- ‘변화’를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 '신승훈은 발라드에 안주한다'고 그러는데 한 장르를 고집스럽게 한 것이 장인정신으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그냥 고집불통처럼 보여지는 것이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외국 화가들을 보면 화풍이 있어서 '저게 고갱 것인지 고흐 것인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내게 ‘왜 피카소처럼 안 하냐’고 하는데 고민도 많았다. 그냥 변하거나 비우면 '똑같은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 게 현실이어서 많이 비웠다. 한번 바꿔서 멀리서 나를 보고 싶었다. 신승훈에서 빠져 나와서 더 좋은 게 보이면 다음 앨범에 넣고 싶었다.

- 이번 앨범은 '터닝포인트' 같은 앨범이라고 했다.

▶ 내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는 결혼이 될 줄 알았다.(웃음) 그게 안되었으니 이번 앨범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11집을 만들기 위한 오버랩 같은 음반이다. 일본 디즈니랜드에서 10분 만에 타이틀곡 '송 포 유'를 만들고, 리메이크를 절대 하지 않던 내가 일본곡 '사요나라'를 리메이크해서 수록하다 보니 창작의 폭이 확 넓어졌다. 내가 만약 정규앨범을 내려고 했다면 내년에 냈을 거다.

- 열혈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 ‘신승훈은 이번에 록’하고 기사가 나가니까 팬들이 ‘그럼, 오빠 징 박힌 걸 입고 나오시겠다는 말인가요?’ 하더라. 하지만 티저영상를 보고 ‘이런 거라면 환영이다’고 했다.

- 이번 앨범의 반응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 '놈놈놈' 영화 봤냐는 얘기는 해도, 누구 앨범 들어봤냐는 얘기는 절대 안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음악은 다 듣고 있다.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싸이월드’에서 듣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속으로만 듣고 있지, 공유를 하지 않는다. 이번 앨범에 대한 어떠한 반응이 나와도 괜찮다. 정규앨범이 아니니까. 하지만 앞으로 발표하게 될 두 번의 앨범을 더 듣고 판단해달라. 평가는 그때로 미뤄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내가 슬럼프가 없는 가수인 줄 안다. 사실 나는 곡을 쓸 때마다 슬럼프가 있다. 앨범이 나오기 전 9~10개월부터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

- 이번 앨범을 만들 때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 사람들은 내가 슬럼프가 없는 가수인 줄 안다. 사실 나는 곡을 쓸 때마다 슬럼프가 있다. 앨범이 나오기 전 9~10개월부터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 에릭 베넷의 '허리케인' 앨범을 듣다가 '얘는 노래도 잘 하고 곡도 좋고… 여기서 이 코드가 뭐지? 이 코드를 어떻게 쓸 수 있지?' 그러면서 슬럼프에 확 빠진다. ‘난 이런 거 못 쓰구나, 언제 쓸 수 있을까’ 이러면서 미친다. 대중들은 그 슬럼프 기간 동안 잠적을 해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 앨범을 발표하고 난 후 이곳저곳에서 다음 앨범을 같이 하자는 제의가 많았다고 하던데.

▶ 편곡이 되기 전까지는 남에게 절대 들려주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내 음악은 멜로디가 강하다 보니 현혹될 수 있고, 내 목소리가 들어가면 신승훈이라는 믿음이 있어 웬만하면 좋다고 한다. 이번에는 몸체가 나오기 전부터 내가 아는 지인들 40-50명에게 들려줬다. 김종서 같은 가수들은 절대 신승훈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다. ‘라디오를 켜봐요’는 타이틀 곡이라기 보다는 먼저 선보이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기승전결이 있는데 음악은 트랙이라는 것으로 구분지을 수 밖에 없어서 아쉽다. '라디오를 켜봐요' 끝 부분과 '나비효과'가 연결되는데 그 곡을 합치면 8분 20초다. 그 시간이면 신인 3명의 노래를 튼다.

- 음악 하는 동료, 선후배들의 반응은 어떤가.

▶ 작곡가 (김)형석씨나 방시혁씨 황세준, 황찬희 같은 친구들이 ‘그냥 수고하셨습니다’가 아니라 많이 좋아해줬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많이 인정해준 앨범이어서 그게 고맙다. 이승철의 ‘열을 세어보아요’를 만든 이현승이라는 친구도 ‘형 다음 앨범 같이 해요’ 하면서 '형, 우리 앞에서 앓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얼마 전에 형석씨가 아침 라디오에 나와서 극찬을 해줘서 친구이지만 너무 고마웠다. 평론가 임진모씨도 최근에 만났는데 라디오에서 1시간 동안 내 앨범에 대해 칭찬을 해줬다.

- 발라드만 한 것도 아닌데 아직도 신승훈 하면 ‘발라드 황제’를 본능적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 우리나라에서 3장 이상 잘 된 가수가 거의 없다. 1000만장이 넘으면 목소리가 질리게 된다는 얘기는 사실이다. 이제 내 목소리는 콜라처럼 되어버려서 신선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늘 ‘의리 있는 팬을 만났다’고 얘기하는데 내 노래가 ‘애이불비’도 있지만 그냥 발라드라고 하기엔 너무 처절한 발라드다. 힙합 마니아, 록 마니아는 많이 들어봤겠지만, 발라드 마니아라는 말은 생소하다. 그런데 나한테는 ‘발라드 마니아’가 있다. 또, 곡을 직접 쓰니까 '이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는 거다. 가끔 팬들이 '편지 20통이나 보냈는데 왜 답장 안 해줘요?'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난 앨범으로 답장을 해준다고 말한다. 6집을 내면 오빠가 보내는 6번째 답장이라고 말한다. 9집 제목이 '나인쓰 리플라이(9th reply)'였던 건 팬들과 나만의 암호를 타이틀로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왜 발라드 황제냐고 묻는다. 요미우리 신문 기자가 당신은 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왜 한국에서 발라드 황제라고 부르냐고 하더라.

-'발라드 황제'라는 수식어가 이후 조성모, 성시경 등 후배가수들에게도 달렸다.

▶ 어떨 때는 조성모를 발라드 황제라고 했다가, 왕자로 바뀌었다가 갑자기 내가 발라드 황제였다가 황태자로 바뀌고… 아버지가 난데 아들이 내가 되고… '발라드 황제'라는 단어 자체가 양면의 칼을 갖고 있어서 '신승훈은 발라드를 해야 한다' '발라드 이외의 것을 하면 안 어울린다'는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다. 하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신승훈이 발라드를 하면 최고봉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자체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앨범은 어찌보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해 왔던 것 중에 발라드만 빼고 다 집어넣는 것이다. 나는 내가 후속곡을 민 적이 없다. 다운타운 차트에서 알아서 올라온다. 팬들이 다 알아서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내가 맘보, 하우스, 월드뮤직, 탱고, 심지어 국악까지도 만들었는데 기억 속에서 자꾸 지우려는 것 같다.




- 요즘 가요계를 보면 중간이 없다.

▶ 예전에는 ‘음악시장’이라는 단어로 가요계를 지칭했는데, 요즘은 ‘음악산업’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 만큼 가수만 해서는 버티기 힘들다. 팬들 뿐 아니라 언론도 가수들에게 5년 이상 활동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가수로 데뷔해서 5년 정도 활동을 하게 되면 콘서트를 열 만한 자질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5년 이상이 되면 다른 가수가 나오고 사람들은 외면하기 시작한다. 그 가수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콘서트7080'이 생겼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근황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다 나와서 노래도 하고 앨범도 낸다는 소식을 전해주더라.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걸 알릴만한 매체가 없었다는 거다. TV에 나가면 컴백했다는 것은 알아도 무슨 노래를 발표했는지는 모른다. 또, 노래 '사비'는 알아도 다른 부분은 따라부르질 못한다. 이게 우리나라 방송 프로그램의 '맹점' 같기도 하다. '그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가 아니라 역사를 짚어줘야 한다.

"일본 가수들은 앙코르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는 '앙코르' 하면 순순히 나가 목이 터져라 몇 곡을 더 불렀더니 '야사시이(착하다)'라고 하더라. 일본에서는 내가 한국말로 노래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 가요 순위 프로그램 출연은 앞으로도 안 할 것인가.

▶ 이제 무슨 상을 받아도 감흥 없다. 트로피 하나 때문에 눈물을 펑펑 흘리는 신인들도 많지만, 우리 집에 트로피가 800개이다. 이제는 그런 것에 집착할 나이는 아니다. 타이틀 곡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영화 ‘타이타닉’을 6번이나 봤는데 한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서 2시간 30분이었던 공연시간을 3시간 15분으로 늘였다.

- 싱어송라이터가 사라져가는 것도 아쉽다.

▶ 신인 때는 카메라 잘 쳐다보는 법, 카메라 잡아먹는 법을 배운다. 매니저가 "카메라를 잡아 먹으란 말이야!" 이렇게 가르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5년 정도가 지나 공연을 할 줄 알게 되면 대중들이 버려버린다. 공연을 할 역량이 되면 올 사람이 없어서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한다고 '뮤지션'이라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는 가수가 2년 정도 활동하면 '뮤지션'이란 호칭을 붙여준다. 음악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뮤지션'이다. 난 19년 동안 '뮤지션'이 되고 싶어서 아직도 노력하고 있는데 까마득한 후배는 벌써 '아티스트'라는 칭호가 붙었다.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에 아티스트는 (조)용필이 형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언론에서도 구분해서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 일본에서의 인기를 얻게 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몸으로 뜬 거다.(웃음) 돈 주겠다는데 내가 고집스럽게 첫 공연을 노개런티로 가자고 했다. 대신 함께 하던 밴드와 스태프를 그대로 쓰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런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이 재미있다면서 자신의 딸을 데리고 오고, 또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내가 시작할 때는 한국가요에 대해 불모지였는데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 대중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동방신기나 빅뱅 같은 가수들이 공연도 하고… 또, 내가 앙코르에 응해서 좋아했던 것 같다. 일본 가수들은 앙코르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는 '앙코르' 하면 순순히 나가 목이 터져라 몇 곡을 더 불렀더니 '야사시이(착하다)'라고 하더라. 일본에서는 내가 한국말로 노래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 프로듀서로 후배 양성을 하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는데.

▶ 신승훈이 힙합 가수 키운다고 기사가 나가 힙합 하는 친구들이 찾아온다.(웃음) 한가지 예를 든 것이지 힙합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프로듀서는 체제가 확실히 잡혀지면 할 것이다. 프로듀서가 언젠가부터 사업가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신인을 키우면서 돈을 벌고 있구나' 이런 마인드로 가면 곤란하다. 나에게 안 맞아서 하지 못했던 음악,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게 하고 싶다. 강타가 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강타가 부르니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 '신승훈스럽다'는 어떤 뜻일까.

▶ '안주하지 않는다'가 아닐까. 후배들에게도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는 '롤 모델'로 남고 싶다. '노래를 좀 할 줄 알았던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

-안성기씨 등과 함께 좋은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소리 소문 없이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데 방법을 배우고 싶다. 이 인터뷰가 끝나면 선배님을 만나러 가야 한다.

[매경인터넷 진향희 기자 happy@mk.co.kr]



===========================
결국은 같은기사.......처음것이 종합본.....아래게..2개 나눠서 게재한거..
걍..사진이 틀려서....
근데 저 늘어진 허벅지살...어쩔겨....ㅋㅋㅋㅋ